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브레이브 하트 (문단 편집) === 스털링 & 폴커크 전투 === 영화에서는 평지에서 만나 적의 기병을 장창으로 카운터하고 보병들이 난전중에 아군 기병이 포위섬멸하는 것으로 묘사된 스털링 전투는 원래 스털링 다리의 전투로, 다리를 건너던 잉글랜드군에 기습적으로 돌격해 혼란에 빠뜨려 승리한 싸움이다. 즉 돌격을 건 것은 스코틀랜드군 쪽이고, 그것도 매우 유효한 기습이었다. 고증이 유일하게 잘 된 부분이라면 얼빠진 잉글랜드군 지휘관. 사령관인 서리 백작은 전투 당일날 늦잠을 잤다. 다만 그는 무능한 인물은 아니었는데, 젊은 시절부터 에드워드 1세를 따라다니며 실전 경험을 쌓은 노장이고 에드워드의 첫 스코틀랜드 침공 당시에도 던바 전투에서 스코틀랜드군을 손쉽게 격파했었다. 아무래도 잉글랜드군의 수가 적군의 5배에 달하는데다 스코틀랜드 왕이 지휘하던 군대까지 손쉽게 박살낸 경험이 있으니, 왕도 없는 귀족들이 지휘하는 소수의 떨거지 쯤 별 것 아니겠지라는 오만에 빠져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오히려 영화에서 묘사된 스털링 전투는 실제 역사상의 로버트 1세의 대승인 배넉번 전투의 전개과정과 비슷하다. 잉글랜드 측의 성급한 기병 돌격을 장창-방패벽으로 저지한 뒤 보병 돌격으로 잉글랜드 보병진을 묶고, 그 사이 소수의 기병 우회 돌격으로 잉글랜드 궁병진을 격파한 후 포위섬멸하는 것은 배넉번 전투의 전개와 매우 유사하다. 심지어 잉글랜드 측 지휘관이 도주하는 것까지 똑같다. 로버트 1세의 위업을 고스란히 복사 붙여넣기한 것. 스털링 전투의 전개에 대해서는 [[http://charger07.egloos.com/3739887|여기를 참고]]. 물론 폴커크 전투도 역사와 많이 다르다. 실제 전투에서는 잉글랜드군의 기사대가 스코틀랜드군의 기사와 궁수진을 격파한 뒤에 장창진을 공격하다가 물러나고 장궁병들이 단단한 장창병 방진을 사격전으로 무너뜨렸다. 그리고 잠시 물러났던 기사대와 보병이 재차 돌격하여 대열이 무너진 스코틀랜드군을 섬멸해버렸다. 이때 스코틀랜드의 기병은 고작 500명으로 2천명이나 되는 잉글랜드의 기병에 비하면 숫자에서도 매우 열세였고, 전투 경험도 부족했기에 잉글랜드군 기병대의 상대가 안됐다. 게다가 순수하게 전술, 전략만으로 윌리엄 월레스를 능가한 에드워드 1세의 군사적 유능한 면모를 보여준 폴커크 전투를 윌리엄 월레스의 전술에 말려서 발리다가 찌질하게 매수로 이긴 것처럼 묘사했다. 전체적으로 스코틀랜드 쪽에서 사실과 맞는 부분은 그들이 장창병(이 장창은 16-17세기에 사용된 파이크가 아니라 그보다 좀 더 짧은 중세식 창이다. 창 길이보다는 밀집한 보병의 조직력이 진짜 위력이었다. 그리고 영화상에 묘사된 통나무를 대충 깎아 만든 창은 당연히 아니었다)을 애용했다는 점,[* 폴커크 전투에서도 잉글랜드 기병대가 장창병들의 진형을 뚫는 데 애를 많이 먹었다.] 그리고 수적으로 압도당한 상황에서 승리했다는 점밖에 없다. 게다가 양적, 질적으로는 딸리긴 해도 대부분 스코틀랜드의 병사들은 잉글랜드군처럼 갑옷과 검, 방패로 무장한 중세 귀족 기사였지, 위에서 서술한 것처럼 영화마냥 킬트만 두른 야만인이 아니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